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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계의 함선지에서 읽을 거리가 늘었다. 자위함대 사령관을 역임했던 예비역 카츠야마 히라쿠씨의 회고록 연재를 보는 데 맛을 들였기 때문이다. 간부학교 생도/초급간부 시절 옛날 얘기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80년대 이후의 얘기는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해상자위대 훈련에 대하여 호위함 간부 입장에서 토로한 불만은 예전의 전직 잠수함 함장 아저씨의 불만과 병렬해서 보면 나름대로 재미를 더한다.
날림/부실 번역으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손상에 대해선 본햏이 책임질 수 없다... :) ()는 원문의 것, []는 본햏 겐세이. 강조나 줄 긋기도 본햏 소행이다. 세계의 함선지 2008년 6월호, 연재 6회분 당시 세계의 군사정세는, 소련은 전략핵무기, 폭격기, 해군 함정 등을 급피치로 증강하고 있었지만, 국내적으론 사회주의체제의 모순이 노정되어 개혁을 외치는 고르바초프가 등장했다. 한편으로 미국은 레이건 대통령이 1983년 전략방위구상(SDI)을 발표하여 소련에 대항했다. SDI를 강하게 추진하는 미국의 자세가 결국 소련을 협상으로 끌어들였고, 1985년 미소군축협상이 개시되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3차 나카소네 내각 시절, 최초로 미일공동 통합지휘소연습이 행해졌고, 대미 무기기술 제공이 개시되어 미일동맹체제가 강화되어 갔고, 내각에는 안전보장회의가 설치되며, 방위청에선 "금후의 방위력 정비"나 "해상방공[洋上防空]체제를 보유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사안을 검토하기 위한 통합막료회의 사무국(당시)이 주최하는 회의에 참가했다. 방위청 안[문관]과 밖[자위대]에서 "해상자위대(해군)의 평시-전시를 막론한 유용성"에 대하여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었고(지금도 그런 듯), 방위력 정비에 관련된 제문제는 왜소화되는 경향이 있어서, 해상막료감부는 위기감을 품고 있었다. 내가 참가했던 회의도, "자원이 부족한 섬나라의 국가전략론"은 부재한 상태에서, 언제나 육-해-공자위대의 셰어(share) 쟁탈전이었다. 나는 1987년 7월 밤, 방위청 내국(內局)의 방위과 해자대 담당부원이 왔다. "해자가 88년 예산요구에서 이지스함을 제출하지 않으니(상관과 재무성[대장성]에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고민이다"고 했다. 듣자하니 "해상교통로보호에 필요하다고 해도, 극히 비싼 이지스함을 요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한다. 나는 "담당자는 아니고 사견이지만"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해상자위대가 "해상교통로보호(우리나라의 해상교통로에 대한 파괴활동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지만, 국토를 침공당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라는 간판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만의 하나 우리 국토가 침공당할 경우, 미국의 항모전투단이 지원하러 올 것이라는 전제가 있다. 유사시 해상자위대의 작전은 이런 전제 위에서 성립한다. 그러나 미 항모전투단에 대항하는 소련의 백파이어나 잠수함의 대함미사일 위협이 높아진 현재, 우리나라가 "이러한 위협 배제에 공헌할 수 있는 고성능 병기인 이지스함"을 보유하지 않고서 미 항모전투단의 지원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지스함은 "미일동맹의 신뢰성을 확보하여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을 억지하는 전략"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불가결한 병기이다. 담당부원은 "잘 알겠습니다. 제출하겠습니다"라고 답했는데, 나는 "다만, 이지스1번함(콩고)의 건조는 1988년도 예산에서 승인되었다. 나는 "나도 이지스 1번함의 예산 획득에 조금이나마 공헌하지 않았나"하고 생각한다.
...... 1988년 8월, 해상막료감부 무기1과(함정관련) 무기반장(과의 업무를 총괄)을 명 받았다. ...... 과원 약 60명 중에서 운영자(operator)는 나와 잠수함 간부 1명뿐이며, 나머지는 각종장비 기술자(specialist)이었고 예산청구-사무집행 전문의 사무관이 있었다. ...... 9월 초, 다음 연도 예산을 재무성에 설명하기 시작했다. 무기과가 담당하는 예산의 항목은 설명서 두께만 해도 40cm에 달하는 방대한 양인데, 금액도 연간 3,000억 엔을 넘었다. 내용은 1기에 10억 엔을 넘는 것부터 군견의 벼룩 살충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 "방위청예산과목표준"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매우 세분화된 규정이었다. 과목간의 유용 같은 것은 예산집행상에 제약이 컸다. 선배들은 예산 총액의 제약에다가 과목이라는 2중 장벽 속에서 일선부대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고심했던 것이다. ...... 방위연수소 동기인 자치성 관료의 얘기를 들으니, "우리는 좀 더 예산을 유연하게 사용한다" 하니, "역시 3류 관청인 방위청과 다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본 함형은 ...... 시스패로와 애스록을 수직발사대에서 운용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1994년 9월 재무성에 설명을 마쳤는데, 10월이 되니 미국에서 MK48 발사관의 값을 크게 올렸다. ...... 당초의 견적에서 거의 2배가 되었다. "큰일 났다" 장비체계과 D반장(동기)과 함께 재무성으로 설명을 하러 갔지만, 재무성 주사는 깐깐하게, "미국은 믿을 수 없군요"라고 대꾸했다. 우리들은 할 말을 잃었지만, 그렇다고 침묵한 채 물러날 수도 없었다. ...... 주사는 "음-" 하고 신음소리를 내고 나서, "초도 탄약조달액을 삭감한다는 조건"(다음 연도에 추가)으로 승인했다. 나는 1992년 12월부터 2년간 해상막료감부 보임과장으로 근무했는데, 직무는 장성(將官)을 제외한 간부 전원의 보직/승진/인사계획/경력관리를 담당하는 과장(후에는 2개 과로 나뉘었다)으로 대령(一左)의 승진을 직접 담당했다. 일은 확실히 중대하지만, 특히 본인뿐만 아니라 부인과 자식까지 포함하는 "3개의 세계"가 연결되는 가정 사정을 포괄하니 진급이냐 퇴직이냐를 결정하는 일이 달갑지 않았다. 잠자리에서도 사람들 얼굴이 떠올라서 식은 땀을 흘리다가 눈을 뜬 적도 있었다. [ ...사람 착하구나 -_- ]
......
1994년 12월, 나는 준장[海將補, 과거 일본군식으로 하면 소장이겠군요]으로 진급하면서 제3호위대군(3호군) 사령으로 보임되어 마이츠루에 부임했다. 이하는 3호군 사령으로서의 2년간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해상자위대 연습 내가 3호군 사령으로 있는 1995년과 1996년 2년간 해상자위대연습(海演)을 경험했다. 당시에는 DDG 묘코가 배치되지 않았고(1996년 3월에 배치되었으니 당시 장비인정시험중), 데이터링크가 미비하여 미일 공동작전에 참가하지 않은 하루나와 시마카제가 기함으로서 2번 걸친 해연에 참가했다(중요선박 호위). 우리 편은 대잠초계기/전자정찰기, 적은 수상함/항공기/잠수함. 가상 중요선박과 훈련지원함을 겸하는 보급함을 호위하여, 정해진 포인트를 통과해서 토쿄만과 오사카만으로 향하여 지방대 함정에게 인계한다. 특히 적의 잠수함은 자위대 잠수함이 참가했다. 소음이 적은 통상형 잠수함은 P-3C도 포착하기 어려웠다. P-3C에 넓은 수색구역을 배정해서 적 잠수함의 제압(스노클링을 방해하여 배터리 충전 기회를 주지 않으면 행동능력이 저하된다)을 기대했다. 호위부대는 패시브 소나의 운용을 제한하여 액티브 소나에 의지하게 했다. 적 잠수함은 패시브 소나를 쓰니, 우리 소나의 2배 이상의 거리에서 탐지가 가능한데, 우리는 자신의 항주음과 소나의 발신음을 들려주고 있으니 전술적으로 불리했다. 그러나 중요선박을 격침시키려면 잠수함측에서도 대함미사일은 충분하지 않고, 반드시 어뢰 공격을 기도할 것이었다. 그 점에 주목했다. 3호군 호위작전의 주안점은, "함재 헬기를 중심으로 전대잠자비를 활용하여 어뢰 공격을 기도하는 잠수함을 먼저 탐지, 격침한다" "상대가 선제 공격을 할 경우에는 중요선박을 회피시키고 적 잠수함을 포착, 격파한다"의 2가지였는데, 예상항로 주변의 음파전달특성, 호위진형, 함재 헬기와 각 센서의 용법, 공격당할 때의 대잠수색법, 대잠기만술을 사전에 연구하고 해상에서 훈련을 거듭하여 해연에 임했다. 1995년에는 함재 헬기가 대활약을 하여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하루나의 비행장(飛行長)은 매우 유능해서 연습 초기에 교훈을 얻어서 신속하게 전술을 개선하고 승무원에게 철저하게 교육하여 성과를 올렸다. 함정도 밀도 높은 소나 수색을 실시하여 접근하는 잠수함을 탐지하여 공격하는 데 성공한 적도 있었다. 3호군 사령부의 M상사(曺長)는 전자전을 열심히 연구하여, 각함의 ESM 담당을 독려하여, 시마카제가 적함이 수초간 주사한 레이다 전파를 탐지하여 함재 헬기로 하여금 격침하게 했다. 1996년에는 고전했다. 우리의 전술도 상대가 상당히 연구하였는데, 그래도 대잠부대로서는 잠수함 격파 수가 제법 나왔다. 해연에 관해서는 2가지 할 얘기가 있다. 첫째는 전투훈련의 작위성이다. 작전중 각종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적잠수함의 잠재수역을 예측할 수 있다. 적은 기동력이 제한된 배터리 잠수함이니, 우리가 침로를 대폭 변경하면 상대의 공격 자체를 회피할 가능성이 높다. 실전이라면 중요선박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전술이어야겠지만, 해연의 경우에는 적을 회피하기만 해서 2주간의 연습을 끝내면 연료만 낭비하는 결과가 된다.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빼앗긴 부하들도 불쌍하다. [ ... -_- ] 나로서는 전투훈련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회피전술을 쓰지 않았다. 둘째는 해연에서 중요선박을 연기하는 함이 한정되어, 연습 시나리오상 여러 척인 중요선박을 1척이 연기해야 한다. 1척의 행동을 연기하고 나서 다시 다른 배의 연기를 해야하니 연습진행에 지장이 생긴다. 1996년의 연습에선 격렬한 적의 공격상황에서 가상중요선박 A의 행동이 늦어졌다. A는 다시 가상중요선박 B로서의 행동을 연습통재부(統裁部)로부터 지시 받았다. 잠수함이 숨어 있는 바다에서 A는 최고속력으로 직진해야 했다. 잠수함 위협이 높은 해역에서는 침로를 빈번하게 변경하는 것이 철칙이다. 실제라면 예정에 늦어지는 한이 있어도 선박의 안전이 우선이다. 실전 같으면 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그러나 잠수함은 이런 고충은 알 리가 없고 절호의 먹이감뿐인 공격을 할 수 있었다.
*호위함대 대항훈련 당시 호위함대는 호위대군 레벨로 작전능력/전투능력향상을 위해 군과 군 대항 연습(여기에도 잠수함과 항공기가 배속된다)을 실시했다. 주적은 수상부대, 어느 쪽이든 서로 상대를 먼저 파악하여 대함미사일로 선제공격을 하느냐가 승부에 중요했기 때문에 초계기에 의한 광역수색능력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우리 2개 호위대 5척의 하츠유키급은 초계기와 데이터 링크가 되지 않았다. 2개 호위대 중 선임사령이었던 S대령[一佐]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열심이었는데, 기분 내키지 않은 초계기(P-3C) 승무원을 설득하여, "탐지 정보를 음성통신으로 하츠유키급에 신속하게 전파하고, 작도반은 신속정확하게 작도하는 훈련"을 거듭한 뒤에 대항훈련에 임했다. [ 근성은 일본혼의 정수! ] 첫 회의 상대는 A호군, 우리 군은 고립된 아군에 탄약을 수송하는 수송부대를 호위하는 임무였고 상대는 그것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나는 용맹한 S대령의 호위대를 주력부대의 앞에 초계로 세웠고, 주력부대는 진형의 세부(수송함의 위치 등)가 파악되지 않도록 각종 기만수단을 강구하였다. 서전에서 S대령은 선두에서 전과를 올려, 미사일 공격으로 적 기함을 격파했지만 그 뒤에 기후가 악화되어 초계기 레이다로 수색이 되지 않았기에(적은 DDG가 있기 때문에 육안 수색은 위험했다) 적 부대의 위치와 대형을 파악하기 곤란해졌다. 제대로 공격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2회차의 상대는 B호군, 그의 임무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열도 부근의 섬(가상)을 공략하는 부대를 수송하고, 우리는 그것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상대는 DDG 2척, DDH 1척을 포함해서 대공, 대잠, 대수상 전투력이 강력하면서 초계기 지원도 있었다. 우리 저지부대는 3호군을 중심으로 지방대 DE, 잠수함, 초계기가 가세하여 수적으로는 손색이 없었지만, 문제는 적이 통과 가능한 해협이 3개에 이르러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가 문제있다. 마치 토고 제독이 고민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대함미사일이 있었다. 논의 끝에 3개 해협 주변에 분산배치하되, 수상함/항공기/잠수함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대함미사일을 집중공격하기로 했고 작년에 활약했던 용맹한 S사령을 이끄는 부대를 배치했다(호랑이를 들에 풀어놓다~). 연구와 실제는 달랐다. 훈련지역은 통행 선박이 많아서 초계기의 수색 데이타로 목표가 적인지를 식별하기 곤란하니 적의 동향을 알기 어려웠다. 적은 엄중한 전파관제를 실시했고, 이래저래 2일차가 지났던 심야에 S사령 휘하의 함 1척이 적함 1척을 육안으로 발견했다. 마치 쓰시마해전의 러시아 함대를 발견한 시나노마루(信濃丸) 같았다. S사령은 함재 헬기를 띄워서 적의 주력을 포착/추적하는 데 성공하였고, 초계기와 동시에 미사일 공격을 할 것을 요청했다. 미사일 사거리 밖에 다른 부대가 있어서 집중공격에 충분하지 않았지만, 견적필전(見敵必戰)이라는 생각에 허가했다. 그러나 초계기측의 발사가 지연되어 공격의 성과는 어정쩡했다. 적은 방어능력을 자신했는지 당당하게 진격을 계속했다. 어째서인지 그 쪽은 S사령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S사령에게 추적을 명했고 휘하의 다른 부대들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미사일을 집중할 수 있는 지점을 기다렸다. 적의 방어능력을 포화시킬 수 있었지만 판정은 구축함의 일부를 격파하고 주력은 건재했다. 상대는 대함미사일 1발도 쓰지 않았는데 우리는 고갈되었다. "진퇴양난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시마카제가 적 대잠초계기를 격추하는 데 성공했고 잠수함과의 통신이 확보되었다. 잠수함은 "스노클로 항주하여 적에 접근 후 잠항하여 어뢰공격을 실시하겠다"고 건의했다. "얕은 바다라서 공격 후 생환을 기약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함장의 투지에 감복하여[...-_-] 허가했다. 그는 과감하게 적 주력을 공격하여 격파했다. 그의 분투로 저지임무를 달성할 수 있었지만 잠수함도 적의 반격으로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 ... -_- ] 그 잠수함은 아키시오인데, 퇴역 후 쿠레의 해상자위대 사료관에 야외전시 되어 있다. 함장 F군은 그 해 봄에 정년퇴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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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그럼 상..
by 우마왕 at 08/18 소구경화되었다고 해도 .. by ssn688 at 08/18 차이를 조금 더 보자면 M79/2.. by 우마왕 at 08/18 소총탄으로 5.56이 적당한.. by ssn688 at 08/17 1, 5.56이 "사실상" 무.. by 우마왕 at 08/17 | |||